1. 먼저 알아야 할 전제: 다른 형제는 '당사자'가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형제가 부모님 돈을 썼으니 제가 돌려달라고 소송하면 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이 생존해 계신 동안 예금의 주인은 부모님입니다. 다른 자녀는 장래의 상속인일 뿐이어서, 형제를 상대로 직접 반환을 청구할 권리가 없습니다.
증거 확보도 같은 이유로 막힙니다. 금융기관은 명의인의 동의나 법원의 제출명령 없이는 거래정보를 제공하지 않습니다(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제4조 제1항). 자녀라는 사실만으로는 부모님 통장 거래내역을 받을 수 없습니다.
결국 부모님을 법적으로 대리할 사람을 세워야 합니다. 그 제도가 성년후견입니다.
2. 1단계: 성년후견 청구와 사전처분을 함께 신청
1) 성년후견개시 심판 청구
질병이나 노령 등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된 사람에 대해, 4촌 이내의 친족은 가정법원에 성년후견개시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민법 제9조 제1항). 치매 진단서, 진료기록, 인지기능검사 결과가 기본 자료입니다.
2) 사전처분(임시후견인 선임)
후견개시 심판이 확정되기까지는 수개월이 걸릴 수 있고, 그 사이에도 인출은 계속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청구와 동시에 가사소송법 제62조 제1항에 따른 사전처분으로 임시후견인 선임을 신청하는 것이 실무상 중요합니다.
3) 문제의 형제가 "내가 후견인이 되겠다"고 나설 때
부모님을 모시고 있는 형제가 자신이 후견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정법원은 후견인을 정할 때 본인의 의사뿐 아니라 후견인이 될 사람과 피후견인 사이의 이해관계 유무도 고려합니다(민법 제936조 제4항). 예금 유용 의심이 있다는 사실과 그 근거 자료를 후견 절차에서 구체적으로 제출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가족 간 다툼이 심하면 법원이 변호사 등 전문가를 후견인으로 선임하기도 합니다.
4) 후견인이 선임되면
후견인은 피후견인의 재산을 조사하여 재산목록을 작성해야 합니다(민법 제941조 제1항). 이때부터 부모님 명의 계좌의 거래내역을 정식으로 확보할 수 있습니다.
3. 2단계: 입증해야 할 세 가지
① 돈이 형제에게 갔다는 자금 흐름
"통장 잔고가 줄었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인출 일자, 금액, 방식을 하나씩 특정해야 합니다.
부모님 계좌에서 형제 본인 계좌나 형제 가족 계좌로 이체된 내역
ATM 현금 인출의 일시·장소 (부모님이 거동할 수 없는 시기의 인출인지)
부모님 카드의 사용처 (형제의 생활권, 개인 용도와 관련된 결제인지)
형제 계좌로 들어간 이후의 흐름 (개인 채무 변제, 사업자금, 부동산 구입 등)
형제 명의 계좌는 소송 단계에서 법원의 금융거래정보 제출명령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② "부모님이 주셨다"는 항변을 깨는 것
이 사건에서 형제가 가장 많이 하는 주장은 "부모님이 쓰라고 주셨다", "통장 관리를 맡기셨다"입니다.
부당이득 사건에서 증명책임은 유형에 따라 달라집니다. 스스로 돈을 지급한 사람이 반환을 구하는 경우(급부부당이득)에는 청구하는 쪽이 법률상 원인이 없다는 점을 증명해야 하지만, 대법원은 이를 타인의 권리를 침해해 이익을 얻은 경우(침해부당이득)와 구별합니다(대법원 2018. 1. 24. 선고 2017다37324 판결). 형제가 부모님 계좌에서 임의로 인출했다면 침해부당이득에 가까워지고, 이 경우 이익을 보유할 정당한 권원(증여·위임 등)이 있다는 점은 형제 쪽에서 증명해야 합니다.
따라서 사건 초기에 "부모님이 돈을 건넨 것"인지, "형제가 꺼내 간 것"인지 구조를 정확히 잡는 것이 입증 부담을 좌우합니다.
③ 인출 당시 부모님에게 의사능력이 없었다는 점
형제가 증여나 허락을 주장하더라도, 그 시점에 부모님에게 의사능력이 없었다면 그 증여나 허락은 효력이 없습니다.
다만 치매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행위가 무효가 되지는 않습니다. 대법원은 의사능력을 자신의 행위의 의미나 결과를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으로 보고, 그 유무는 구체적인 법률행위와 관련하여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합니다(대법원 2002. 10. 11. 선고 2001다10113 판결).
그래서 "언제 치매 진단을 받았는가"보다 ”문제의 인출일 전후 상태가 어땠는가"가 핵심입니다. 자료는 인출일을 기준으로 앞뒤를 채우는 방식으로 모아야 합니다.
신경과·정신건강의학과 진료기록, 처방 변화
MMSE·CDR 등 인지기능검사 결과와 검사일
노인장기요양 등급판정 자료
요양원·주간보호센터의 간호기록, 일상생활 수행 기록
형제의 "생활비·간병비로 썼다"는 주장에 대해
부모님을 위해 실제로 지출한 병원비·요양비·생활비는 반환 범위에서 공제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인출을 문제 삼기보다, 부모님을 위한 지출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에 집중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형제의 주장 | 반박의 초점 |
|---|---|
부모님이 주셨다 | 해당 일자의 의사능력 자료, 증여할 동기·정황의 부재 |
통장 관리를 위임받았다 | 위임 범위를 넘는 사용(개인 채무 변제, 본인 가족 생활비 등) |
간병비·생활비로 썼다 | 영수증 없는 현금 인출, 요양시설 비용과의 금액 대조 |
4. 3단계: 취할 수 있는 조치
민사: 반환 청구와 가압류
후견인은 부모님을 대리하여 형제를 상대로 부당이득반환(민법 제741조) 또는 불법행위 손해배상(민법 제750조)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형제가 법률상 원인이 없음을 알고 돈을 가져갔다면, 받은 이익에 이자를 붙여 반환해야 합니다(민법 제748조 제2항).
본안 소송 전에 형제 명의 재산에 대한 가압류를 먼저 검토해야 합니다. 판결을 받아도 형제에게 남은 재산이 없으면 회수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형사: 친족상도례 개정 이후 달라진 점
과거에는 직계혈족 사이의 재산범죄는 형이 면제되어, 형제가 부모님 돈을 가져가도 사실상 처벌이 어려웠습니다. 헌법재판소가 이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뒤(헌법재판소 2024. 6. 27. 2020헌마468 등), 2025년 12월 31일 개정된 형법 제328조는 친족 사이의 재산범죄를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친고죄로 바꾸었습니다.
실무상 확인할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범행 시점: 개정 규정은 2024년 6월 27일 이후의 범행에 적용됩니다. 그 이전의 인출에는 종전의 형 면제 규정이 적용될 수 있어, 인출 내역을 시점별로 나눠야 합니다.
고소할 수 있는 사람: 피해자는 부모님입니다. 다른 형제는 피해자가 아니므로 고소권이 없습니다. 피해자의 법정대리인은 독립하여 고소할 수 있으므로(형사소송법 제225조 제1항), 선임된 후견인이 고소하는 것이 현실적인 경로입니다. 형사 대응에서도 후견이 출발점인 이유입니다.
고소기간: 친고죄는 범인을 알게 된 날부터 6개월 안에 고소해야 합니다(형사소송법 제230조 제1항).
죄명: 통장·카드를 맡아 보관하던 중 사용했는지, 허락 없이 꺼내 썼는지에 따라 횡령(형법 제355조 제1항), 절도, 컴퓨터등사용사기 등이 문제될 수 있습니다.
고소 취소의 효과: 친고죄이므로 1심 판결 선고 전에 고소가 취소되거나 처벌불원 의사가 제출되면 공소기각 판결을 해야 합니다(대법원 2026. 2. 26. 선고 2026도354 판결). 반환 합의를 이끌어내는 협상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5. 지금 바로 할 일
알고 있는 범위에서 의심되는 인출 시기와 금액을 메모로 정리 (언제 알게 되었는지도 함께 기록)
부모님 치매 진단서, 진료기록, 장기요양 등급 자료 확보
성년후견개시 청구와 임시후견인 사전처분 신청 준비
후견인 선임 후 거래내역 확보 → 형제 재산 가압류 → 민사·형사 병행 여부 결정
자주 묻는 질문
Q. 부모님이 살아 계신데 제가 형제를 상대로 직접 소송할 수는 없나요?
원칙적으로 어렵습니다. 반환청구권은 부모님에게 있으므로, 후견인이 부모님을 대리하여 청구해야 합니다.
Q. 치매 진단 전에 인출된 돈도 문제 삼을 수 있나요?
가능합니다. 진단 시점이 기준이 아니라 인출 당시의 실제 인지 상태가 기준입니다. 진단 전이라도 증상이 이미 진행되었다는 기록이 있다면 다툴 수 있습니다.
Q. 형제가 부모님을 모시는 대가로 쓴 것이라고 하면요?
실제 부양·간병에 쓴 비용은 인정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범위를 넘는 개인적 사용은 반환 대상이며, 지출 근거는 형제 쪽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치매 부모님의 예금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돈은 빠져나가고 증거는 흐려집니다. 후견 청구, 자금 흐름 추적, 민사·형사 대응의 순서를 처음부터 함께 설계하는 것이 회수 가능성을 높이는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