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통장에 모르는 사람 이름으로 돈이 들어옵니다. 몇만 원에서 몇십만 원 정도의 적은 금액인 경우가 많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은행에서 "계좌가 지급정지되었다"는 연락이 오고, 곧이어 모르는 번호로 "돈을 보내면 풀어 주겠다"는 메시지가 옵니다.
이것이 이른바 통장협박(통장묶기)입니다. 금액이 적다고 가볍게 넘기거나 상대방이 시키는 대로 돈을 돌려보내면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습니다.
1. 통장협박(통장묶기)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보이스피싱 조직은 피해자를 속여 돈을 보내게 할 때, 아무 관련 없는 사람의 계좌번호를 알려 주기도 합니다. 계좌번호는 가게 홈페이지, 사업자 안내문, 중고거래 게시글 등에서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속은 피해자가 그 계좌로 돈을 보냅니다.
피해자가 사기를 알아차리고 은행에 피해구제를 신청합니다.
은행은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따라 돈이 들어간 계좌를 사기이용계좌로 보고 지급정지합니다.
범인이 계좌 주인에게 연락해 "돈을 보내면 신고를 취소해 주겠다"며 돈을 요구합니다.
이른바 '핑돈'도 같은 방식입니다. 적은 돈을 보내 계좌를 묶은 뒤, 풀어 주는 대가로 더 큰 돈을 요구합니다. 사업용 계좌가 묶이면 영업에 바로 지장이 생기기 때문에 자영업자가 주로 표적이 됩니다.
2. 모르는 돈이 입금됐을 때 하면 안 되는 일
① 입금된 돈을 쓰거나 인출하지 마세요
내 계좌에 들어왔어도 내 돈이 아닙니다. 대법원은 잘못 송금된 돈을 마음대로 쓴 경우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보았습니다(대법원 2010. 12. 9. 선고 2010도891 판결). 보이스피싱 피해금이 들어온 계좌의 명의인이 그 돈을 인출한 경우에도 피해자에 대한 횡령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대법원 2018. 7. 19. 선고 2017도17494 전원합의체 판결).
② 연락해 온 사람에게 돈을 보내지 마세요
"잘못 보냈으니 이 계좌로 돌려 달라"는 연락도 그대로 따르면 안 됩니다. 돌려보내라는 계좌가 또 다른 범죄 계좌일 수 있고, 돈을 보낸다고 지급정지가 풀리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범죄 자금을 옮겨 준 것으로 의심받을 수 있습니다.
③ 메시지와 통화 기록을 지우지 마세요
협박 메시지, 입금 내역, 통화 기록은 나중에 지급정지를 풀 때 가장 중요한 증거가 됩니다.
3. 입금 직후 해야 할 일
은행에 바로 알리기: 거래 은행에 모르는 돈이 입금된 사실을 알리고, 지급정지 여부와 처리 방법을 확인합니다. 잘못 들어온 돈이라면 은행을 통해 반환 절차를 밟는 것이 안전합니다.
경찰에 신고하기: 돈을 요구하는 연락을 받았다면 112나 가까운 경찰서에 신고하고, 신고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받아 둡니다.
증거 모으기: 입금 내역, 협박 메시지 화면, 통화 기록, 계좌번호가 공개되어 있던 곳(가게 홈페이지, 중고거래 글 등)의 화면을 모아 둡니다.
4. 지급정지와 전자금융거래 제한, 어떻게 풀 수 있나요?
사기이용계좌로 지급정지되면 그 계좌에서 돈을 뺄 수 없을 뿐 아니라, 명의인이 전자금융거래 제한 대상자로 지정되어 다른 은행의 인터넷뱅킹·모바일뱅킹까지 막힐 수 있습니다.
이때 명의인은 금융회사에 이의제기를 할 수 있습니다.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은 계좌 명의인이 그 계좌가 사기이용계좌가 아니라는 점이나 정당한 이유로 돈을 받았다는 점을 객관적인 자료로 소명하면 지급정지 등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2024년 8월 28일부터 시행된 개정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은 통장협박 피해자를 위한 구제 절차를 따로 마련했습니다. 명의인이 보이스피싱과 관련이 없다는 점을 소명하면, 피해금으로 들어온 금액을 뺀 나머지 부분의 지급정지를 풀고 전자금융거래 제한도 해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통장협박 행위 자체를 처벌하는 규정도 함께 생겼습니다.
이의제기에서 중요한 것은 "나는 모른다"는 말이 아니라 객관적인 자료입니다.
입금한 사람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점을 보여 주는 거래 내역
범인에게서 받은 협박 메시지
경찰 신고 접수 자료
계좌번호가 공개되어 있던 곳의 화면
5. 통장을 빌려준 적이 있다면 상황이 다릅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은 내가 전혀 관여하지 않은 계좌에 돈이 들어온 경우입니다. 지인 부탁으로 통장, 체크카드, 비밀번호, OTP를 넘긴 적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전자금융거래법은 통장이나 체크카드 같은 접근매체를 넘기는 행위, 대가를 받고 빌려주는 행위, 범죄에 쓰일 것을 알면서 빌려주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위반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계좌가 보이스피싱 피해금을 받는 데 쓰였다면 사기방조 혐의가 함께 문제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통장을 빌려줬다는 사실만으로 모두 똑같이 처벌되는 것은 아닙니다. 수사기관은 다음을 따져 봅니다.
왜 통장을 넘겨주었는지
대가를 받았거나 받기로 했는지
범죄에 쓰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지
들어온 돈을 직접 인출하거나 다른 계좌로 보냈는지
경찰 연락을 받았다면 지인과 나눈 대화 내역을 지우지 말고 그대로 보존해야 합니다. 계좌에 남은 돈을 인출하거나 지인에게 보내는 것도 절대 하면 안 됩니다.
6. 정리: 돈은 건드리지 말고, 자료는 남기세요
모르는 돈이 입금됐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돈에 손대지 않고 은행과 경찰에 먼저 알리는 것입니다. 지급정지가 길어지면 생업에 바로 지장이 생기므로, 이의제기에 필요한 자료를 빨리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계좌가 이미 묶였거나 협박 연락을 받았다면 변호사와 상담해 대응 방향을 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7. 자주 묻는 질문
Q1. 모르는 사람이 보낸 돈을 그냥 돌려주면 안 되나요?
돈을 보낸 사람이나 연락해 온 사람에게 직접 돌려주면 안 됩니다. 보이스피싱 피해금일 수 있고, 돌려 달라는 사람이 범인일 수 있습니다. 은행에 알리고 은행을 통해 처리해야 합니다.
Q2. 입금된 돈이 몇만 원뿐인데 무시해도 되나요?
금액이 적어도 피해자가 신고하면 계좌가 지급정지될 수 있습니다. 금액과 상관없이 은행에 먼저 알리는 것이 좋습니다.
Q3. 지급정지가 되면 계좌 전체가 막히나요?
지급정지된 계좌에서는 돈을 뺄 수 없고, 명의인이 전자금융거래 제한 대상자가 되면 다른 금융회사의 인터넷뱅킹·모바일뱅킹도 막힐 수 있습니다. 통장협박 피해자라면 이의제기를 통해 피해금을 뺀 나머지 부분의 지급정지를 풀어 달라고 요청할 수 있습니다.
Q4. 협박범에게 이미 돈을 보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보낸 내역과 대화 기록을 모두 보존한 채 경찰에 신고하고, 은행에 이의제기를 진행해야 합니다. 돈을 보냈다고 지급정지가 풀리지는 않으므로 추가 요구에는 응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