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제 중에는 "곧 이혼할 거야"라고 말하던 상대방이, 헤어진 뒤 갑자기 태도를 바꾸는 경우가 있습니다. "협박을 받아서 어쩔 수 없이 만났다"고 주장하며 배우자와 함께 고소장을 내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겪으면 억울함과 당혹감이 앞서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감정보다 기록과 진술의 일관성으로 판단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래에서 협박죄가 어떤 기준으로 판단되는지, 어떤 사정이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지, 경찰조사에서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 정리해보겠습니다.
1. 왜 '협박죄'로 고소하는 것일까
간통죄는 헌법재판소 2015. 2. 26. 선고 2009헌바17 등 결정으로 위헌 판단을 받아 폐지되었습니다. 기혼자와의 교제 자체는 더 이상 형사처벌 대상이 아닙니다.
그런데 외도 사실이 드러나면, 교제 당사자가 배우자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자발적인 만남이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자주 사용되는 것이 협박죄(형법 제283조) 고소입니다. 협박죄는 3년 이하의 징역, 50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주장 내용에 따라 다른 죄명이 함께 문제 될 수도 있습니다.
만남이나 특정 행동을 강제했다는 주장 → 강요죄(형법 제324조)
금전 요구가 결부되었다는 주장 → 공갈죄(형법 제350조)
헤어진 뒤 반복적인 연락이나 접근이 있었다는 주장 →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2. 협박죄는 어떤 기준으로 판단될까
대법원은 협박죄의 '협박'을 일반적으로 사람에게 공포심을 일으킬 만한 해악을 고지하는 것으로 봅니다. 또한 상대방이 그 의미를 인식했다면, 실제로 공포심을 느꼈는지와 관계없이 협박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대법원 2007. 9. 28. 선고 2007도606 전원합의체 판결).
즉 수사기관이 주로 살펴보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실제로 어떤 말이나 메시지가 오갔는가
그 말이 당시의 관계와 맥락에서 해악의 고지로 볼 수 있는가
같은 문장이라도 연인 사이의 다툼 속에서 나온 말인지, 상대방을 압박하려는 의도로 반복된 말인지에 따라 평가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3.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사정
사건마다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사정은 '자발적인 교제였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교제 기간 동안 상대방이 먼저 연락하거나 만남을 제안한 기록
애정 표현, 미래를 약속하는 대화, "이혼하겠다"는 취지의 메시지
함께한 여행, 숙박, 선물, 결제 내역, 사진 등 일상적인 교제 정황
상대방이 언제든 관계를 끊을 수 있었고 실제로 자유롭게 생활했다는 사정
'협박' 주장이 외도가 드러난 뒤나 이별 후에 처음 나왔다는 시간적 흐름
4.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사정
반대로 다음과 같은 사정이 있다면 사건이 예상보다 복잡해질 수 있습니다.
이별 과정에서 "배우자에게 다 말하겠다", "회사에 알리겠다", "사진을 보내겠다" 같은 말을 한 경우. 감정이 격해진 상황에서 나온 말이라도 해악의 고지로 평가될 여지가 있습니다.
위와 같은 말과 함께 만남, 금전, 사과 등을 요구한 경우
헤어진 뒤 상대방이나 그 배우자에게 반복적으로 연락하거나 찾아간 경우
대화 기록 일부를 삭제했거나, 진술이 시점마다 달라지는 경우
이처럼 결론은 어떤 대화가 오갔고, 그 말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으며, 상대방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제3자가 사건 개요만 듣고 유불리를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고소장에 적힌 구체적인 주장과 실제 기록을 맞춰 보는 과정이 먼저 필요합니다.
5. 상대의 배우자도 함께 고소했다면
협박죄의 피해자는 해악의 고지를 받은 사람입니다. 배우자에게 직접 연락하거나 어떤 말을 전한 적이 없다면, 배우자에 대한 부분은 별도로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이런 사건은 배우자가 제기하는 상간자 손해배상 청구(민사)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형사 조사에서 한 진술이 민사 소송에서도 그대로 증거로 쓰일 수 있으므로, 처음 진술할 때부터 두 절차를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참고로 대법원은 부부가 장기간 별거하는 등 혼인이 이미 파탄에 이른 상태였다면 그 이후의 부정행위는 불법행위가 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대법원 2014. 11. 20. 선고 2011므2997 전원합의체 판결). 다만 "곧 이혼할 것"이라는 상대방의 말만으로 혼인 파탄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므로, 이 부분도 신중하게 다뤄야 합니다.
6. 경찰조사 전에 해야 할 일
대화 기록 전체 보존: 유리한 부분만 캡처하기보다 대화방 전체를 백업해 두는 것이 신빙성 측면에서 낫습니다. 불리해 보이는 기록도 삭제하지 않아야 합니다. 삭제 사실 자체가 의심을 살 수 있습니다.
상대방·배우자와 연락 중단: 해명이나 합의 시도라도 새로운 협박이나 회유로 비칠 수 있습니다. 협박죄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형법 제283조 제3항)입니다. 그렇더라도 합의는 직접 접촉이 아니라 적절한 절차를 통해 진행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SNS 게시 자제: 억울함을 공개적으로 토로하면 별도의 명예훼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고소 내용 확인: 언제, 어떤 말이 협박이라고 주장되는지 먼저 파악해야 대응 방향을 세울 수 있습니다.
7. 경찰조사에서 주의할 점
출석 일정은 조정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변호인 참여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형사소송법 제243조의2).
사실관계를 시간순으로 미리 정리하세요. 교제 시작, 이혼 언급, 이별 경위, 마지막 연락 순서로 정리하면 진술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쉽습니다.
기억나지 않는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하세요. 추측성 답변이나 과장은 신빙성을 떨어뜨립니다.
진술을 거부할 권리가 있습니다(형사소송법 제244조의3). 다만 무조건적인 거부보다는 사전에 범위를 정해 두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조서는 서명 전에 끝까지 읽어보세요. 진술 취지와 다르게 기재된 부분은 수정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형사소송법 제244조 제2항).
자료는 말로만 설명하기보다 의견서와 함께 정리하여 제출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8. 무고죄로 맞대응해야 할까
허위 고소라는 생각이 들면 무고죄(형법 제156조)를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수사 진행 중에 맞고소를 하면 사건이 감정싸움으로 비쳐 쟁점이 흐려질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불송치나 혐의없음 결정이 나온 뒤, 고소 내용의 허위성이 객관적으로 드러난 시점에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나, 무고죄는 입증 요건이 까다로우므로 전문가와의 상담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기혼자와의 교제 이후 제기되는 협박 고소는 겉으로 보기에 비슷해 보여도, 실제 결론은 대화의 구체적인 내용과 맥락, 이별 전후의 행동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같은 문장도 앞뒤 대화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기 때문에, 보관 중인 기록을 처음부터 다시 살펴보는 것이 대응의 출발점입니다.
첫 조사에서 한 진술은 이후 형사 절차는 물론 민사 소송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조사를 앞두고 있다면 고소 내용과 보유한 자료를 함께 검토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