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박 때문에 원치 않는 성관계에 이르게 된 경우, 어떤 죄목으로 고소할 수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입증해야 하는지 막막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폭행처럼 물리적인 힘이 눈에 보이게 동원되지 않았다면 "이것도 인정받을 수 있을까" 걱정하시는 경우도 많은데요. 법적으로 어떻게 다뤄지는지 정리해드리겠습니다.

어떤 죄목에 해당할까 — 강간죄

폭행이나 협박으로 사람을 간음(성관계)한 경우는 형법 제297조 강간죄에 해당합니다. 법정형은 3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형법상 상당히 무거운 범죄로 다뤄집니다. 협박만으로 이뤄진 경우에도 폭행이 함께 있었던 경우와 동일하게 이 조항이 적용됩니다. 즉 물리적인 폭력이 없었다고 해서 죄가 가벼워지거나 다른 죄목으로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참고로 간음에까지 이르지 않고 신체 접촉 등 추행에 그쳤다면 강제추행죄(형법 제298조)가, 폭행·협박이 아니라 상대방이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 상태에 있는 것을 이용한 경우라면 준강간죄(형법 제299조)가 각각 별도로 적용됩니다. 본인의 상황이 정확히 어느 유형에 해당하는지는 구체적인 경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드시 짚어야 할 요건들

① 협박이 있었을 것

여기서 협박은 반드시 "죽이겠다"는 식의 극단적인 위협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에게 해악을 고지해 겁을 먹게 만드는 것이라면, 그 방식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지위나 관계를 이용해 불이익을 주겠다고 암시하는 것, 상대방의 약점(예: 사생활, 비밀)을 이용해 위협하는 것도 협박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② 협박의 정도를 판단하는 기준에 중요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법원이 성범죄에서 '폭행 또는 협박'이 인정되려면 "피해자의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여야 한다는 매우 엄격한 기준(이른바 최협의설)을 적용해왔습니다. 이 기준 때문에, 피해자가 물리적으로 격렬하게 저항한 흔적이 없으면 유죄 인정이 어려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기준에 중요한 변화를 만든 것이 대법원 2023. 9. 21. 선고 2018도13877 전원합의체 판결입니다. 이 판결은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에 대해, 상대방의 반항을 곤란하게 할 정도로 강력할 필요는 없고, 신체에 불법한 유형력을 행사하거나 일반적으로 상대방에게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는 정도의 해악을 고지하는 것이면 충분하다고 판시했습니다. 종래의 엄격한 해석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했다는 반성적 고려가 판례 변경의 근거로 제시됐습니다.

다만 정확히 짚어드릴 점이 있습니다. 이 판결은 강제추행죄에 대한 것으로, 강간죄의 폭행·협박에 대해 직접 판단한 것은 아닙니다. 강제추행죄와 강간죄는 법정형과 죄질에 차이가 있어, 이 판례의 취지가 강간죄 해석에 어느 범위까지 그대로 이어질지는 앞으로 계속 지켜봐야 할 부분입니다. 다만 두 범죄가 '폭행 또는 협박'이라는 같은 문언을 쓰고 있고,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한다는 같은 취지를 공유하고 있는 만큼, 법조계에서는 이 판례의 논리가 강간죄 판단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③ 협박과 성관계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을 것

그 협박 때문에 성관계에 이르게 됐다는 연결고리가 있어야 합니다. 협박이 있었던 사실과 성관계가 있었던 사실이 각각 존재하더라도, 그 둘 사이에 인과관계가 불분명하다면 이 부분이 쟁점이 될 수 있습니다.

준비해두면 좋은 증거

-- 협박의 내용을 보여줄 수 있는 자료: 문자, 메신저 대화, 통화 녹음, 이메일 등 협박이 있었다는 사실과 그 구체적인 내용을 보여줄 수 있는 기록

-- 당시 상황을 뒷받침할 정황: 목격자나 주변인의 진술, 그 전후 관계의 성격(직장 내 지위 관계, 반복적인 만남 등)을 보여줄 수 있는 자료

-- 사건 이후의 정황: 피해 사실을 주변에 알린 기록, 심리적 충격을 받은 정황(진료 기록, 상담 기록 등)

-- 의료 기록: 필요한 경우 신체적 피해나 정신적 피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진단서나 진료 기록

증거는 시간이 지날수록 확보하기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으므로, 가능한 한 빨리 관련 자료를 정리해두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소 절차에서 알아두실 점

과거에는 강간죄가 '친고죄'로 분류돼 피해자의 고소가 없으면 수사나 처벌이 불가능했지만, 2013년 법 개정으로 이 조항이 폐지됐습니다. 현재는 피해자의 고소 없이도 수사기관이 인지하면 수사와 기소가 가능한 비친고죄입니다. 다만 실무적으로는 피해자가 직접 고소하는 경우가 많고, 피해자의 진술과 협조가 사건 진행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여전합니다.

경찰서에는 성폭력 사건을 전담하는 수사 인력이 배치돼 있는 경우가 많고, 해바라기센터 같은 통합지원기관을 통하면 의료 지원, 심리 상담, 법률 지원, 수사기관 연계를 한 번에 받으실 수 있습니다. 또한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국선변호사 제도가 있어, 경제적 부담 없이 법률 조력을 받을 수 있는 길도 마련돼 있습니다.